레벨4 수준의 SK하이닉스 스마트 팩토리, 9분 만에 걷기 시작한 휴머노이드, 조종간 없는 우주선. 서울미래컨퍼런스에 오른 연사 여덟 명은 AI에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라는 주제 아래 반도체 공장과 로봇, 우주, 뇌공학, 교육 현장의 사례를 차례로 꺼냈다. 통제와 위임 가운데 한쪽만 고른 연사는 없었고, 저마다 인간과 AI의 역할 분담을 제시했다.
무대에는 이광형 전 KAIST 총장, 마이크 매시미노 전 NASA 우주비행사, 정유인 SK하이닉스 부사장,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 김정환 위븐 대표, 오삼일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연구팀장, 임창환 한양대 뇌공학연구센터장, 김남주 연세대 AI에듀테크센터장이 올랐다. 기조연설과 특별강연, 세 개 세션 발표가 이어졌다.

반도체 공장과 휴머노이드: 기술 사양의 현주소
메모리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의 정유인 부사장은 자사 스마트 팩토리가 5단계 중 레벨4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레벨5는 시스템이 환경 변화를 보고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아 검증·실행한 뒤 결과를 다시 학습하는 자율 팹으로, 회사가 비전으로 제시하는 단계다. 장비 정비의 무인화는 협동로봇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 부사장은 휴머노이드의 현재 한계도 짚었다. “휴머노이드는 춤추고 텀블링하는 건 잘하지만, 손으로 하는 미세 작업은 아직 안 됩니다.”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에이로봇의 엄윤설 대표는 'Next AX Industry' 세션에서 '소버린 휴머노이드'를 주제로 발표했다. 세상의 사물이 인간의 신체에 맞춰 설계돼 있으니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는 사람의 도구를 그대로 쓸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엄 대표는 에이로봇의 휴머노이드 '앨리스' 모델을 AI 플랫폼에 주고 말로 지시하자 코드 작성 없이 9분 만에 로봇이 걷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에이로봇은 액추에이터를 직접 만들어 소비자가를 4만7천 달러까지 낮췄다. 무대에는 휴머노이드 23대가 줄지어 섰는데, 한국산은 없었다고 한다.

엄 대표는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로보틱스에서 병목은 하드웨어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과의 경쟁에 대해서는 “지금 기조가 유지된다면 미·중 경쟁에서 중국이 이길 것”이라며 “초저가로 쏟아질 중국 휴머노이드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필요한 건 여러분의 도움”이라고도 했다.
우주선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전 NASA 우주비행사 마이크 매시미노는 '우주, 새로운 개척의 시대'를 주제로 특별강연에 나섰다. 우주왕복선과 조종간이 없는 고도 자동화 우주선 스페이스X 드래곤을 견주며 AI에 맡기는 쪽의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처음엔 통제권을 내주는 게 걱정됐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조종하다 사고를 낼 가능성이 기술을 믿을 때보다 더 컸다”고 말했다. 또 “AI가 우주비행사를 대체하지 않았다”고 했다. 창의성은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2009년 허블 우주망원경 마지막 수리 임무를 언급한 매시미노는 “AI가 그런 해법을 떠올릴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양대 뇌공학연구센터장 임창환은 AI를 인간의 불완전함을 메우는 동반자로 규정했다. 착시와 청력, 시력의 한계가 있는 인간이 망원경과 현미경, 자동차와 비행기, 책과 컴퓨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는 “기술은 인간의 부족함에서 시작됐다”며 “AI도 인간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라고 말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연구 현황도 소개했다. 뉴럴링크 칩이 이식된 사람은 30명가량이라고 언급했다. 한국의 BCI 연구에 대해서는 “한국은 다소 뒤처져 있지만 내년부터 대형 연구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AI 에이전트와 일터: 설계·조직의 문제
멀티 에이전트 기반 바이브 코딩 기업 위븐의 김정환 대표는 시행착오를 공유했다. 범용 AI 서비스로는 2,000원에 15분이면 만들 수 있는 결과물을 AI 여러 개에 나눠 맡겼더니 1시간 반이 걸렸고 비용은 10만 원까지 불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해보니 오류율이 급증했고 결과물이 처참했다”고 말했다.
구글 연구진 연구에서는 AI 하나가 혼자 일할 때 오류를 1로 놓으면 조율 없는 멀티 에이전트의 오류는 17.2배, 오케스트레이터가 조율하는 경우는 4.4배였다. 김 대표는 에이전트의 이해도와 결과물이 80점, 90점에 그치고 단계마다 점수가 곱해지는 점을 짚으며, 원인이 일을 넘겨주는 순간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위븐이 택한 해법은 제작은 싱글, 검수는 멀티 구조다. 개발자가 자기 코드를 검수하면 오류를 놓치듯 AI도 만든 쪽의 기억을 보지 않아야 제대로 검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를 바꾼 뒤 웹사이트 한 장의 원가는 7,000~8,000원에서 1,500원 수준으로 내려갔다. 그는 “실제 서비스까지 가지 못한 AI 에이전트 사업들의 진짜 원인은 AI의 능력보다 설계와 오케스트레이션의 부족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연구팀장 오삼일은 한국은행이 지난해 근로자 5,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AI 활용 조사를 소개했다. 업무에 AI를 쓰는 근로자는 51.8%였고, 꾸준히 쓰는 사람은 약 3분의 1이었다. AI가 업무 시간을 20% 이상 줄여주는 업무는 전체의 약 5%였다.
아낀 시간과 생산량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었다. 오 팀장은 아낀 시간이 “일터에서 상당 부분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아직 J커브의 밑단에 있다”고 했다. 그는 “기술이 병목이 아니다. 근로자가 워크플로우를 어떻게 바꾸고, 기업이 조직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병목”이라고 짚었다.
자의식 AI와 교육
기조연설에 나선 이광형 전 KAIST 총장은 'AI 시대의 휴머니즘 2.0'을 주제로 삼았다. 자의식 없는 AI의 사고는 관리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그는 “자의식이 없다면 그것은 기계의 실수”라며 “불과 원자력, 자동차, 칼을 관리하듯 하면 된다”고 말했다.
자의식을 가진 AI에 대해서는 매슬로의 5단계 욕구설에 빗대 AI 욕구 5단계를 설명했다. 그는 “지금 데이터센터의 전력과 냉각을 걱정하는 것이 바로 AI의 항상성을 걱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 개선은 이미 기술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도 했다.

이 전 총장은 “AI와 타협할 때 다섯 번째는 막고 나머지는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욕구 5단계 중 자기 개선 단계만 막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강대국이 합의해 IAEA 같은 국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AI에 지나치게 의존해 스스로를 약화시키지 말고, AI가 너무 강해지기 전에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연세대 AI에듀테크센터장 김남주는 학생이 챗GPT와 함께 한 과제에서 AI가 혼자 수행한 비율이 81%였다는 학습 로그 분석 결과를 소개했다. 학생 응답이 아닌 로그로 본 수치다. 학생들은 그럼에도 “제가 처음에 질문을 던졌으니까요”라고 답했다.
김 센터장이 소개한 연구에서는 학습자의 감정 측정 정확도가 97% 이상이었다. 그는 “학습자의 감정까지 97% 이상의 정확도로 측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질문하는 AI가 좋은 교육용 AI이며, 학생들은 질문·판단·검증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주문이다. “AI에게 답 하나만 요구하면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다. 서너 개의 답을 요구하고 반드시 검증하라”고 말했다.
그는 “AI는 실패해 본 적도, 눈물을 흘려본 적도 없습니다. 아무리 발전해도 가르치는 건 잘할 수 있지만, 기르는 건 안 된다”고 했다.
여덟 연사의 발표가 모이는 곳은 하나다. 초자율 사회의 조건은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지킬지 판단하고, 일하는 방식과 배우는 방식을 바꿀 힘을 인간이 잃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