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가가 만든 식물성 콜라겐 펩타이드 ‘VC-H1’은 라오스 유기농 농장에서 재배한 히비스커스를 원료로 한다. 이 성분을 기점으로 로가는 특정 천연물 하나를 상품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능을 먼저 분석한 뒤 AI로 적합한 천연물과 펩타이드 후보를 탐색하는 신소재 개발 플랫폼 ‘바이오파운드라(BioFoundra)’를 구축했다. 하경수 로가 공동대표를 만나 히비스커스 재배부터 AI 기반 소재 설계로 이어진 사업 궤적을 물었다.

히비스커스에서 뽑아낸 식물성 콜라겐 펩타이드
로가는 2017년 라오스 유기농 농장에서 히비스커스 재배를 시작했다. 2019년에는 이 원물에서 식물성 소재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이후 2년간 연구를 거쳐 2021년 제조 기술과 원물에 관한 특허를 확보했다. 이렇게 완성된 소재가 식물성 콜라겐 펩타이드 VC-H1이다. 2022년에는 프랑스 시알 파리(SIAL Paris)에서 원료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 대표는 원물이 가진 가치에 비해 정작 생산자가 얻는 부가가치가 낮다는 문제의식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좋은 음식은 재료가 좋아야 합니다. 바이오 소재도 같습니다. 산업의 효율성만 따지면 직접 농사를 짓는 방식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원물과 공급망을 직접 관리해야 기술과 품질에 대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게 제 안에 남아 있는 농사꾼의 기질인 것 같습니다.” 로가는 히비스커스에서 확인한 재배와 정제 기술을 다른 천연물로 확장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로가가 식물성 콜라겐 회사로 출발한 것은 맞지만 그게 최종 목적지는 아닙니다. 히비스커스에서 확인한 기술을 다른 천연물에 적용하고, 각 소재에서 더 신뢰도 높은 유효 성분을 찾아내는 것이 지금의 로가입니다.”

시장 수요를 먼저 확인하는 AI 소재 설계 플랫폼
로가가 구축한 바이오파운드라는 기존 소재 개발 순서를 뒤집는 구조다. 연구실에서 좋은 소재를 만든 뒤 시장을 찾는 방식이 아니라, 시장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기능을 먼저 분석하고 그에 맞는 천연물 후보를 AI로 탐색한다. 가상 환경에서 분자구조와 효능을 검토한 다음에야 실험과 생산, 인체적용시험, 글로벌 판매로 이어지는 순서다.
하 대표는 이 접근을 소재 개발의 출발점을 옮기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지금까지는 연구실에서 좋은 소재를 만든 뒤 시장에 내놓고 소비자를 찾는 방식이 많았습니다. 저희는 시장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기능을 먼저 확인하고 그 수요에 맞는 천연물 소재를 개발하려고 합니다. 소재 개발의 출발점을 기술이 아니라 고객에게 두는 것입니다.” 로가는 이 플랫폼을 자체 연구소가 없는 작은 브랜드에도 개방해 각자의 콘셉트에 맞는 원료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모델로 운영하고 있다.
청주·세종 두 공장과 CDMO 밸류체인
로가는 청주에 제1공장을 두고 세종에는 제2공장을 건설 중이다. 두 공장은 히비스커스 등 원물 재배부터 정제, 생산까지 연결하는 로가의 생산 기반이 된다. 하 대표는 자체 연구소가 없는 브랜드에도 R&D 역량을 제공하는 일이 이 구조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작은 브랜드도 자신만의 콘셉트와 원료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R&D는 대기업의 전유물에 가까웠어요. 자체 연구소가 없는 브랜드에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원료를 개발할 수 있는 연구실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이런 사업 구조를 바탕으로 로가의 지난해 매출은 300억원을 넘어섰다. 올해 5월에는 KB인베스트먼트가 주도한 시리즈B 라운드에서 155억원을 조달했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데모데이에 참가해 기술과 사업 계획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 대표는 지금 단계에서는 B2B 고객을 우선 지원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금은 기술과 생산 능력, 신뢰를 더 쌓아야 하므로 B2B 고객부터 지원하고 있습니다. 작은 브랜드가 자체 R&D를 주도할 수 있도록 돕고, 그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갈 계획입니다.”

농업 3세대의 눈으로 본 소재 산업
하 대표는 SK플래닛, 11번가, 쿠팡 등을 거치며 커머스 업무를 경험했고, 파머스라운지와 한국시계병원 같은 초기 사업에서 두 번의 폐업도 겪었다. 그는 이 시기가 자신이 가장 오래 이해하고 있는 분야가 농업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고 말한다. “애플리케이션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여러 사업을 거치고 나니 제가 가장 오래 봤고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분야가 농업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어요. 농업이 가진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업이 가진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줄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원칙이다. “아버지가 말한 농사의 공식이 있습니다. 한 번 잘되면 다음에는 잘 안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농사는 날씨와 자연이 결정하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렇다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덜할 수는 없습니다. 사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원칙은 원물 재배부터 연구, 생산까지 직접 연결하려는 로가의 사업 구조로 이어졌다.

로가가 그리는 다음 단계는 B2B 원료 공급을 넘어 개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성분을 스스로 알고 선택하도록 돕는 것이다. 하 대표는 회사가 좋다고 내세우는 제품보다 개인에게 맞는 성분을 아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청주와 세종 두 공장을 기반으로 원물 재배부터 AI 기반 소재 설계, 생산까지 연결하는 구조가 완성되면, 바이오파운드라는 작은 브랜드의 연구실 역할을 넘어 개인 맞춤형 소재 플랫폼으로 확장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