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로봇, 바이오, 콘텐츠 분야 스타트업이 초기 설비 투자 부담 없이 실험할 수 있는 공유 연구·제작시설을 용산에 조성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문지은 스타벤처스 대표이사(미래학자)는 한강과 용산을 청년·스타트업의 기회 인프라로 활용해야 한다는 도시전략 기고문을 통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첨단산업 스타트업이 초기 비용을 낮추며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공유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 대표는 도시의 공정성이 같은 주소를 갖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승 이동의 사다리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봤다. 이런 관점에서 한강과 용산을 공공자산이자 '기회 인프라'로 재해석해, 도시 자체가 하나의 액셀러레이터로 작동해야 한다는 게 기고문의 핵심 논지다.
공유 연구·제작시설의 구조
제안의 골자는 공공부지를 매각하지 않고 공공소유를 유지한 채 장기임대, 기간형 사용권, 민관협력 방식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용산에 조성하자고 제시된 시설은 크게 네 가지로, 입주 기간을 2~3년으로 정한 기간제 주거, 공유 연구·제작시설, 투자·오픈이노베이션 허브, 글로벌 창업 게이트웨이다.
이 가운데 공유 연구·제작시설은 인공지능과 로봇, 바이오, 콘텐츠 기업이 개별적으로 값비싼 장비와 실험 공간을 갖추지 않아도 초기 비용을 낮추며 실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스타트업이 기술 검증 단계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설비 투자 부담을 공유 인프라로 상쇄하는 구조다.
투자 허브와 밸류체인 연결
투자·오픈이노베이션 허브는 창업자가 벤처캐피털, 액셀러레이터, 대기업, 대학, 연구기관과 상시로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제안됐다. 창업자와 투자자를 물리적으로 연결해 초기 창업 투자유치가 이뤄지는 접점을 도심 안에 만들자는 취지다. 문 대표는 이를 통해 도시 자체가 액셀러레이터로 작동해야 한다는 논지를 뒷받침했다.
글로벌 창업 게이트웨이는 해외 창업자와 연구자, 투자자가 국내에 정착하고 사업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능으로 그려졌다. 문 대표는 이 구상의 참고 사례로 프랑스 파리의 스테이션F를 들었다. 스테이션F는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과 지원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캠퍼스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KOSME)이 이곳에서 국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한국 창업가들이 참여한 바 있다.
공공부지 활용 방식의 전환
문 대표는 핵심 공공부지를 단기 개발수익이 아니라 장기적 '옵션 가치'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런던 나이츠브리지, 뉴욕 맨해튼, 도쿄 미나토구, 홍콩 피크 등 세계 주요 도시의 핵심 입지가 부동산 가치로만 소비되는 사례와 달리, 한강과 용산은 문화·산업 기회와 연결된 도시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시정책의 성과 지표도 주택 공급량 같은 양적 지표에서 '몇 개의 사다리를 만들었는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 대표는 청년의 교육, 취업, 창업, 투자, 글로벌 네트워크 접근 등 상승 이동 가능성을 확대하는 것이 개발이익보다 우선해야 할 목표라고 봤다.
이번 제안은 용산어린이정원 등 기존 용산 개발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공공소유 유지를 전제로 한 장기임대·기간형 사용권 방식이 실제 시설 조성으로 이어질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공유 연구·제작시설과 투자 허브가 실제로 들어설 경우, AI·로봇·바이오 스타트업의 초기 기술 검증 비용 구조에 어떤 변화를 줄지가 이어질 논의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